Conte #8 개편 이전 글

악몽을 꾸었다. 몇 년 만의 일인지도 모르겠다. 정말 오래된 일이다. 난 악몽을 꾸었고 그 악몽의 원인제공자는 친구였다. 오래된 내 친구. 그리고 저녁때.

술을 먹었다. 또 술을 먹었다. 나는 또 혼자가 되었다. 왜 난 이렇게 속이 좁은 것인가. 오래된 친구의 약혼자를 소개 받는 자리. 그 자리에서 그 여자를 보게 될 거라는 건 이미 알 고 있었다. 하지만 그렇게 피하고만 살 수는 없었다. 당연히 직면해야 했다. 친구를 힐난 하는 것은 아니다. 그 여자와 내가 무슨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. 그저 오래전 아주 오래전 좋아했던 오래된 기억의 단편을 꺼내야 했을 뿐이다. 아무런 일도 아니다. 그냥 그 여자를 다시 보면 될 뿐이다. 단순히 그러면 되는 것이다. 이미 오래전에 다시 보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친구의 처가 될 여자를 계속 무시하고 살 수는 없다. 세상엔 피할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이 있는 것이다.

술을 먹었다. 셋이서 술을 먹었다. 너무 먹었고 난 취했다. 간단한 일이다. 택시를 타고 집에 오면 되는 일이다. 그 정도도 못할 만큼 취한 것은 아니다. 아니 거의 취하진 않았다. 아침부터 입고 있던 셔츠는 지나치게 흘린 땀으로 냄새가 나기 시작했고 냄새를 풍기지 않기 위해 조금 떨어져 걷던 나를 왜 그렇게 혼자 가냐고 그 여자가 부르지만 않았다면 난 취하지 않았을 것이다. 날 혼자 내버려 둬, 어차피 넌 오래된 기억의 조각에 불과 하다는 것을 왜 난 혼자서 부정하고 있는 걸까. 아니 난 이제 널 사랑하지 않아. 아니 좋아하지 않아. 생각도 하고 있지 않아.

친구에게 화를 냈다. 밴댕이 같은 내 속은 그렇게 옹졸하게 별 것도 아닌 이유로 친구에게 화를 냈다. 화를 낸다? 2년만의 일이다. 난 화를 잘 내지 않는다. 제발. 왜 친구까지 취해서 내 화를 듣고만 있는 거냐. 화를 내 나에게 말이야. 나에게 화를 내. 제발 날 힐난하고 비난하란 말이야.

친구는 조용히 있었다. 친구가 내가 그녀를 좋아했었다는 사실을 알 리가 없다. 기간도 길지 않았으며 나 이외의 누구도 알지 못했을 뿐이다. 바보 같은 자식. 어째서 스스로를 변호하지 않는 거야. 왜 그렇게 착하니. 내가 밉지도 않니?

12시에 택시를 탄다고 거짓말을 하고 술집을 나왔다. 2시까지 집 쪽으로 걸었다. 2시간을 걸어도 그다지 집은 가까워 지지 않는다. 꽤 먼 곳에서 술을 먹었구나. 뒤늦은 후회. 친구의 결혼은 4개월 뒤다. 애써 외면했던 날짜는 다가온다. 그녀는 결혼을 하고 나는 친구에게 화를 낸다.

더 이상 걸을 수 없었다. 피곤했고 택시를 타며 졸며 집으로 돌아왔다. 집에 들어와 잠이 든다. 수많은 악몽이 날 스치고 지나갔다. 7시에 무거워진 머리를 이끌고 잠에서 깬다. 깨 보니 내 머리맡의 핸드폰은 장렬하게 사망했다. 베터리가 다 된 모양이었다. 아니. 내가 꺼 버렸군. 기억이 난다. 집에 와 난 핸드폰의 베터리를 빼버리고 잠이 들었다. 그렇게 난 잠이 들었다. 날 죽여버려랴. 핸드폰의 안테나로 내 심장을 찔러라.

아픈 머리를 부여잡고 컴퓨터를 키고 아침을 먹으려 했지만 도저히 속이 아침을 먹을 형편이 아니다. 적절히 괴로운 속과 나른한 일요일의 아침.

문자를 보낸다. [미안하다. 추한 모습 보여서. 축하한다. 친구.]

받은 문자를 확인한다.
[어젯밤에 왜 전화 안 받았어? 뭐해? 어디 아파? 보는 대로 연락해줘.]

문자를 보낸다.
[몸이 안 좋네, 오늘은 좀 쉬고 싶어. 약속 미뤄도 되지?]

그리고 다시 꺼 버린다.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다.
이런 기분으로 연인을 만난다는 건 일종의 죄악이다. 라고 생각하며..

하루 종일 굶었다.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. 아니 커피 한잔과 유산균 발효유 한 개를 먹었다. 속은 쓰라리도록 아프지만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다. 핸드폰을 키니 잘 쉬라는 투의 문자가 와 있다. 이해심도 좋다. 제발. 다들 그렇게 착하지 마.

해가 진다. 져 가는 해가 붉게 물들어 보기 좋다. 담배를 피고 다시 커피한잔을 들고 침대에 앉아 자괴감에 취해본다. 아무렴 어때. 어차피 그 둘은 결혼할 테고 내일은 또 내 연인을 만날 것이다. 아무짝에 쓸모없는 알콜 덕분에 생긴 실수로 내 기억 한켠에 남을 뿐이다.

잠을 자고 싶었다. 깊은 잠이 올 것이다. 악몽만은 빼고. 악몽만은 빼고. 깊은 잠을 자고 싶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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언제 썼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던 글.

하드에 남아있었다. 약간의 퇴고와 함께 올림.

물론 Fiction.

덧글

  • RocknCloud 2006/11/28 23:54 # 답글

    가슴이 아픈 글이네...
    헌데 어쩌겄어.. 내 짝이 아니라는데...
  • Praesepe 2006/11/29 00:02 # 답글

    음... 왠지 '오래된친구'의 시점으로 좀 써보고 싶은데?
    내일중으로 한번 정리해서 트랙백 해보고싶은데 괜찮겠지?
  • 작은꿈 2006/11/29 13:23 # 답글

    음...난 또 이어쓰기하는 건줄 알았네..아무튼 잘 읽었어..^^
    근데 내용이 너무 무거운거 아니냐?...ㅋㅋ
  • 소년elf 2006/12/04 05:54 # 삭제 답글

    난-_-흑석동에서 두시간 거리면 반경 어디쯤 되지라고 계산하고 있었음-_-
  • 『이소』 2006/12/04 11:52 # 답글

    RocknCloud // 픽션 픽션 픽픽션;; 냠;;
    Praesepe // 잘 봤다.
    작은꿈 // 이어쓰기 해도 되는데...
    소년elf // 놀러오기는 하는구료 ㅋㅋㅋ 하지만 -_- 내 친구가 결혼했을리 없잖아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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